On Naturalness- NANJI Artists Critic Workshop 2018_CHOI Jung Yoon (Independent curator), 2018


In this era full of artificial man-made things, seeking more natural forms seems to make sense. On many food shows on television today chefs are passionate about finding quality ingredients, and from them bringing out their natural flavor. Chefsprepare the ingredients with their skilled hands, balancing its taste and imparting health and savoriness. A painter, whose process is not unlike that of these chefs, also struggles to find the best materials for painting (like fine fabric, wood, nails, priming materials and paint). A painting is completed through the process of finding natural materials, through attaining a state of relaxation, and then naturally uniting brush, paint, fabric and the body of the artist. Through the memory of meeting PARK Kyungryul in the studio on one hot summer day, I have come to contemplate the meaning of ‘naturalness’ she emphasizes.


In painting: creating a new temporality

Reviewing PARK Kyungryul’s work in chronological order, I realize she constantlychanges almost every aspect of her work, like in her compositionof the picture frame, her coloring techniques and the coloritself. Instead of establishing aunique signature style that merely repeats itself, she chooses to give herself to her surrounding environment, its people and places and flows like running water. While her early works are in one complete, closed structure that clearly divides the background and object through precise depictions and coloring, her current works are quite the opposite. For example, the work For you who do not listen to me(2017) interlaces various layers between background and object, making them hardly distinguishable. It seems impossible to find an actual method for ‘reading’ this painting because there is no complete narrative.  In this work rather than one long narrative, fragmented scenes are connected like an omnibus. The reason why the work appears to take on an omnibus structure is that the type of her objects andexpressivetechniques are all quite different. Different categories of images like a severed body or quotation mark on a computer keyboard co-existinside the picture. This applies not only in the objects she paints but also in her modes ofexpression, whichinclude mixed techniques indiverse styles of different times. Some images are executed in realist detail while other parts are expressed in graphic lines.

The concept of time revealed in this work resembles the time we experience through the internet. The world we encounter via monitor easily mixes past, present, and future, surpassing the notion of consecutive time. When searching online for Johann Strauss II’s  ‘Voices of Spring,’Ho Chi Minh Symphony Orchestra, Yiruma, and a cover play by an amateur musician are listed up together on the same screen. Travelling across time and space through the flow of individual consciousness is possible today. Now, instead of one voice of power, hundreds and thousands of diverse opinions coexist and connect through online networks. In this situation PARK Kyungryul also freely accesses and utilizes many resources that have existed throughout the history of art, unfolding new temporalities that corresponds with the present situation in her works.

Outside painting: Formal experiments surpassing the limit of medium

How one work does not capture an entirenarrative leads to new possibilities. As the exhibition space itself becomes an installation, the installation is formed as if composing a single painting. Also, instead of being inside a white cube, the artist’s paintings penetrate into every corner of the space, and are not merely tied to the wall.

The artist’s solo exhibition New Paintings(2017) at Side Room, London, present works that naturally blend into the old brick walls and the natural light. Works on paper fittingly stand in the recesses, and frameless works on fabric are fixed on walls with tape and tack. One painting becomes an installation-painting along with other elements of the space. While Side Room was an experiment in joining a space and a two-dimensional work, the artist tries to directly intervene in the space as a kind of sculptural objectat Madame Lillie Gallery. Here, she exhibits objects she has produced with close-to-nature-materials such as ceramic, fabric, wood and soil. Sculpture, painting and installation are artificial constructs in the name of genre; however, for PARK, distinctions like these no longer seem to be valid.

This interest in the unique formal qualities of each medium is also revealed in her solo exhibition <2013GOHAP404>(2014) at Common Center, Seoul. The artist places an old television on the ground and covers the screen with opaque glass. The video, which was constructed from found footage, becomes a white hazy mass, if one were going through anopaque glass. This can be understood as a gesture that interrupts the function of the television media that most vividly transmits a particular event or situation. While her experimentinthis work weakens the media’s original function by the external intervention, the formal experiments appearing after 2017 are specified as endless expansions over the boundary. Her ‘paintings’ that have continued for more than the last ten years exceeds these artificial boundaries of canvas, expanding towards space and into architecture.


Let me go back to this ‘naturalness’ I mentioned at the beginning. The word ‘naturalness’ means ‘there is no strangeness because it has no artificial fabrication’ and ‘it fits the flow and is reasonable.’ The word ‘nature’ means ‘a state existing by itself in the world without added manpower.’ A painting is a form that is created by an artist through intimate physical contact - thus manpower is added. In fact, it can only be made by human hands. What does it then mean that an artwork is natural? PARK Kyungryul’s works have their own form of ‘naturalness’ because she makes consistent decisions such as in her choice of material, painting subject, compositional method, mode of expression, and in her expansion to sculpture and installation. Things that do not seem to harmonize at all gather and stand before us with an appropriate sense of balance.

자연스러움에 관하여 -2018 난지비평워크숍_최정윤 (독립큐레이터), 2018

오늘날과 같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것들로 가득한 시대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요리사들은 좋은 재료를 구해 재료 본연의 맛을 찾는 데 열광한다. 숙련된 손길로 좋은 재료를 다듬어서 균형 잡힌 맛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깊이가 느껴지는 맛에 건강해지는 기운을 받는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화가 역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좋은 천, 나무, 못, 프라이밍 재료, 물감 등 최고의 재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자연과 가까운 재료를 찾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붓과 물감, 천, 그리고 작가의 몸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한 점의 그림이 완성된다. 무더운 여름날 작업실에서 만난 박경률을 떠올리며, 그가 강조해서 말했던 ‘자연스러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림 안에서 : 새로운 시간성의 창안

박경률의 작품을 연도순으로 살펴보다보면 화면 구성방식, 채색 기법, 색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들어 반복하지 않는 대신,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사람, 장소에 자신을 내맡겨 흐르는 물처럼 유동하기를 선택했다. 초기 작업이 비교적 배경과 대상의 구분이 분명하고, 꼼꼼한 스케치와 채색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완결된 닫힌 구조로 만들어졌다면, 현재의 작업은 정 반대에 가깝다. 그 예로 <For you who do not listen to me>(2017)를 살펴보면, 배경과 대상을 구분하기 어렵도록 다양한 층위의 레이어가 얼기설기 뒤얽혀 있다. 실질적으로 이 그림을 ‘읽는’ 하나의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애초에 기승전결을 가진 완결된 이야기가 작품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하나의 긴 이야기보다는 단편적인 장면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져나간다. 옴니버스식의 구성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가 그리는 대상의 종류나 표현 기법 역시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화면 안에는 절단된 신체와 키보드 자판의 따옴표 표식과 같이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이미지들이 공존한다. 그가 그리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다양한 시대의 기법이 혼종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부분은 사실주의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래픽 디자인과 같이 선으로만 처리하기도 한다. 

위 작품에서 드러나는 시간의 개념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경험하는 시간과 닮아 있다. 모니터 위로 접하는 세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손쉽게 넘나들며 순차적인 시간의 개념을 뛰어 넘도록 한다. 유투브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왈츠를 듣고자 검색하면, 호치민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루마, 아마추어 연주가의 커버 연주까지 모두 한 화면에 펼쳐진다. 개인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권위 있는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수백 수천가지의 다른 의견들이 공존하고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박경률 역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존재해 온 여러 자산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사용하며, 작금의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간성을 작품 속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그림 바깥에서 :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식 실험 

하나의 작품이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는 특성은 새로운 가능성들을 가능하게 했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인스톨레이션이 되면서, 하나의 회화 작품을 구성하는 것처럼 설치가 이루어졌다. 또한 화이트큐브가 아닌 일상적 공간에서 그의 회화는 벽에 갇혀있지 않고 공간 구석구석으로 침투했다.  

2017년 런던의 사이드룸(Side Room)에서 열린 개인전 <New Paintings>을 보면, 벽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벽과 자연광에 작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벽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종이 작업이 알맞게 세워져있고, 프레임이 없는 천 작업은 테이프나 압정 등으로 벽면에 고정시켰다. 하나의 페인팅은 공간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하나의 인스톨레이션-회화가 된다. 사이드룸에서 공간과 평면 작업이 하나로 작동하는 실험이 이루어졌다면, 마담릴리갤러리(Madame Lillie Gallery)에서는 조각적 오브제로 공간 내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시도를 했다. 세라믹으로 만든 물질-덩어리와 천, 나무, 흙 등 자연과 가까운 재료로 직접 제작한 오브제를 함께 전시했다. 조각, 회화, 설치 등은 장르라는 이름으로 인위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박경률에게는 더 이상 이와 같은 구분법이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각 매체가 가진 고유한 형식적 특성에 관한 관심은 2014년 커먼센터에서 개최한 개인전 <2013GOHAP404>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오래된 텔레비전을 바닥에 눕힌 뒤, 불투명한 유리를 브라운관 앞에 씌웠다. 파운드 푸티지로 구성되었던 영상 이미지는 간유리를 통과하면서 희뿌연 색 덩어리로 변모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텔레비전의 역할을 흩트리는 제스쳐이다. 이때의 실험이 해당 매체의 본래 기능을 외부적 개입으로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2017년 이후에 나타나는 형식 실험은 끝없이 경계의 바깥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10여 년 이상 지속해온 ‘그리기’는 캔버스가 만드는 인위적 경계를 넘어 공간으로, 건축의 일부로 뻗어져나간다. 

다시 처음에 말했던 ‘자연스러움’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자연스럽다는 동사는 ‘억지로 꾸미지 않아 이상함이 없다’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는 뜻을 가진다. 자연이라는 명사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회화는 작가가 물리적으로 밀접한 접촉을 통해 만들게 되는 대상이다. 그러니 인간의 힘이 더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아니, 인간의 힘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때에는 무엇을 의미할까? 박경률의 작품을 보면, 사용하는 재료, 그리는 대상, 화면 구성 방식, 표현 기법, 그리고 조각과 인스톨레이션으로의 확장까지, 그가 내리는 매 순간의 결정은 상당히 일관된 기준을 따라 이루어져서 그 자체로 자신만의 ‘자연스러움’을 가진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그것들이 적절한 균형감각을 이루며 우리 앞에 있다.

On the Exhibition ‘On Evenness’ _ MARK LUNGLEY (Director of Lungley Galle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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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hibition is comprised of paintings and works on paper. In each work, the artist employs formal dualities from the art historical canon – namely, narration versus abstraction, colour versus line, flat versus passive space, and painting versus drawing. 

The works elude easy categorization, moving freely between apparent abstraction and coded figuration, between traditional painting and illustration. Highly intuitive in approach, rich, colourful paintings flow with a stream of conscious expression, and forms radiate incoherent rhythm. The heterogeneity evident in each composition invites the viewer to resist finding a resolve in finished artworks but indulge in the liminal space that Park creates using her own visual language.

The pleasure in Park’s work is in the complexity of her application, layers overlap and forms appear to collide descending into a curious mix of action and associative reference where bodily experience, memory and perception become embroiled. In A Meeting Place (2018) a limited palette of yellow and oranges is applied as blocky planes of colour and thick line delineations create a daedalean sense of space. Engaged in the semiotics of painterly language itself: thick impasto mixes readily with large brush strokes and shrewd mark making, radiant hues and hurried gestures appear in their own space and time revealing unrelated unconscious.

Gestural brush marks record the creative process through painterly illusion; the composition suggests an organic architecture, evoking an expanse of internalised psychological perception. Park’s composition suggests private thought that is simultaneously whimsical and brutal. Yet, strangely intimate, her abstractions negotiate a space for both ideas and feelings, attune with an emotional appreciation. Park’s hypersensitive style captivates with a convincing resonance, negotiating the sublime traditions of abstract painting with a unique and momentous confidence she paints with a sense of spontaneous immediacy, ultimately, conveying a sense of experimentation and discovery with in her contemplative gestures.

Refuting the typical dichotomy of fast drawings and slow paintings, Park’s works do not exist within a fixed chronology of creation. Some compositions are made in a day, others over the course of months. What is of primary concern is the examination of the hierarchy between media that seemingly exists in art making. By refusing to acknowledge any media-specific pecking order within each picture– Are these drawings? Paintings? Or none of the above? – The artist generates works that interrogates the very production of her practice.

The told and the untold - A Meeting Place: Park Kyung Ryul Solo Exhibition _ Ronnie Hsu (Independent Curator), 2017


The moment when you walk into the gallery, the show begins. > is Park Kyung Ryul’s second solo exhibition in London, which the artist turns the whole gallery into what we can see as a huge “installation” by creating the interaction between each works and even each part of the space.

Unframed paintings hung high above the human eye level or overlapped with one another; sculptures placed directly on the ground without plinths - the works are not confined to their own sizes as the boundary expands to the whole gallery. Each work can be presented individually, but all together, it allows the artist to convey the idea of her own narrative system.

It starts from words she come across in news. By taking the specific words out of the context, and realising them in her works, the artist deconstructs the text, and breaks the correlation within it, in order to highlight the word itself to further consider the core meaning hiding underneath and how it affects our mundane lives.

‘Spinning’ is the theme that runs through all the objects in this exhibition. The artist picked up the word from the news articles of the tragic Grenfell fire, which left hundreds of people homeless and at least 80 people dead in the deadly blaze earlier this year in West London.

Things in newspapers seem generalised. Whether is a good news or an excruciating one, putting them down in black ink on paper, it describes our everyday life in a rather emotionless way. That is to say, everything in the news become a story of 5W1H - a story of who did what in where at when of why, and by how. It's plain, blunt, or in other word, even on every stories happening around us. Meanwhile, the truth is nothing is even in our world.

Taking the word ‘spinning’ out of its context, it is the sense of word and our recognition to the meaning of it that the artist manages to capture. It would be somehow far-fetched if a viewer immediately identifies this core of the show, as the artist has completely deconstructed the word and put it in an abstract and obscure way with her subconsciousness, which is very much influenced by the style of 18th century novelist Laurence Sterne.

With the idea of creating under the stream of her unconsciousness, it allows the artist to produce something purely in her own perception with the subject in mind. During this process, the word detached from its original meaning, but as it still derives from it, a hint of the word remains.

In Park KyungRyul’s shows, you see movements in the paintings, the figures of spinning object on canvas; you cannot help but move around your eyes to follow the invisible lines that the artist uses to link and hold the objects all together. The exhibition is a web the artist spins, and you are trapped ever since the beginning. 

Alibi for Painting, or Painting for Alibi _ HAHM YOUNG JUNE (Director of COMMON CENT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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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GOHAP404> is based on a court case file which seems to be written in the most neutral and specific language. The artist first dismantles the court case text into groups of adjectives and verbs where nouns are absent until the clearly logical nature and the cause and effect are not important anymore to the three characters who appear in this case. Then, as if empathizing with her own personal experience, she anticipates the images by digging into the emotional bundles floating around each character. She draws a blueprint, elaborately calculates each meaning within, prepares to greet the empty canvas by selecting what to present and not to and when everything is perfectly ready, paints in the posture of a craftsman constructing a building according to the meticulous design he made. As she does not retouch them after they are done, the paintings in this exhibition are the outcome of a process of orderly logical representation which seems almost cold and expressionless.

The most interesting characteristic of this exhibition is that such frigidity described above is not consisted of customary manners used in conventional exhibitions of paintings which is usually a collection of pictures composed of colors, shapes and meanings. This exhibition is a whole set of something representing several pictures, several things that are not pictures, an image that is a picture or that is not a picture. This is because the usual painters reveal in the forefront the by-products of each step during the process of drawing a picture. The process of sensible thinking which one goes through to converge to painting is not a secret recipe known only to the artist anymore. It is not in the field of mystery hidden behind the other side of an accomplished painting.

As a result, the first floor and the second floor of this exhibition are a peculiar rhyming couplet. The first floor is installed as if the object and process of her own painting were a set scene of a theater stage or artifacts of a natural history museum and she secretly hangs a medium-sized painting as fresh as a photograph having just been developed and hung to dry. Therefore, the audience faces the process of the painting which in fact is not supposed to be an artwork before coming into contact with the original work. The audience stands in front of the picture reminding himself of the images and groups of text which were kindly presented by the artist. After reaching the second floor by climbing up the outer stairs after exiting the darkness - which seems like a metaphor of the inner side - the audience may observe several bundles of images hinting on why the relationship of the previously seen picture and those that were not pictures, were defined that way.

Such layout in the showroom could be a representation of the process in which Park KyungRyul searches to find the reason of doing her work. Similar to her previous work where she looked for hints in the non-structured language of patients with dementia, she continuously hypothesizes and experiments to prove a conclusion which may be extremely obvious to her. However, this experiment does not analyze psychologically why certain forms are endlessly being created inside her head. It is not about interpreting why she is inspired by images of a bird or a paper doll. Instead, the artist’s experiments are a question about how to define the relationship of herself with the surroundings (which will be the materials for her painting). It seems that she has learned to be nonchalant or to give up on the cause and effect of the situation itself. Only the act of pursuing the experiments is left and by endlessly doubting herself she will obsessively determine the predestined duty of her work.


회화를 위한 알리바이, 혹은 알리바이를 위한 회화 _ 함영준 (커먼센터 디렉터), 2014

『2013고합404』는 가장 중립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서술 되었음 직한 어느 사건의 판례를 원안으로 삼고 있다. 우선 사건에 등장하는 세 캐릭터에게 명징한 논리적 실체와 인과 과정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작가는 작가에 의해 명사가 부재하는 형용사와 동사의 묶음으로 판례를 해체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이입이라도 하듯, 각각의 캐릭터를 둘러싸며 부유하는 감정 덩어리에 직접 파고 들어 이미지를 유추한다. 설계도를 그리고, 그 안의 의미를 정교하게 계산하고,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않을 것을 선택하면서 빈 캔버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난 뒤에는 스스로 꼼꼼히 만들어 둔 설계에 맞게 건축물을 시공하는 장인의 자세로 그림을 그린다. 다 그린 뒤에 거의 고치지 않을 정도로 이 전시 속 회화들은 차갑고 무표정하리만치 정연한 논리적 재현 과정의 산물이다.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설명한 서늘함이 색과 형태와 의미로 구성된 그림의 집합이라는 회화 전시의 일반적 습속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전시는 몇 점의 그림, 몇 점의 그림이 아닌 것, 그리고 그림이기도 하고 그림이 아니기도 한 어떤 이미지의 총체다. 그것은 보통의 회화 작가들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진행할 법한 각 단계의 부산물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에 수렴하기 위해 통과하는 감각적 사고의 과정은 더 이상 작가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레시피가 아니다. 완성된 회화의 이면에 숨어 미스테리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전시의 1층은 2층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1층에서 우선 본인 회화의 대상과 과정을 연극 무대의 대도구나 자연사 박물관의 유물처럼 설치해 놓고, 마치 갓 인화해서 말려 둔 사진처럼 싱싱한 중형 회화 한 점을 코너 뒤에 슬쩍 숨겨서 걸어 두었다. 그러므로 관객은 이 전시에서 원래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원래는 작품이 아니어야 할 그림의 과정을 대면한다. 작가가 친절하게 늘어놓은 이미지와 텍스트 덩어리를 상기하면서 그림 앞에 선다. 그리고 - 마치 내면의 메타포와도 같은 - 어둠에서 벗어나 외부 계단을 통해 2층에 당도하면, 관객은 앞서 그림과 그림이 아닌 것의 관계가 그렇게 설정된 이유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몇 가지의 이미지 덩어리를 관찰하게 된다. 

이러한 동선은 박경률이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치매 환자가 내뱉는 구조화되지 않은 언어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했던 이전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는 지극히 당연할 법한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험은 머리 속에서 끝없이 생겨나는 형상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본인에게 왜 새나 종이 인형 같은 도상이 떠오르는지 해석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실험은 스스로를 중심에 두면서 (회화의 재료가 될)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현상 자체의 원인과 결과에는 무관심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체득한 듯 보인다. 단지 실험을 지속한다는 행위 자체 만이 남아, 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작업에 대한 운명적 당위를 집착적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Review on ‘2013GOHAP404’_ LEE DAN JI (Curator of INSA ART SPACE)_ Monthly Art, Dec. 2014

COMMON CENTER 2014.10.10-11.9

COMMON CENTER 2014.10.10-11.9

커먼센터 2층 본 전시의 마지막 방에서, 유리창이 있던 자리에 걸려 마치 엑스레이 필름처럼 내부와 외부를 뒤집은 듯한 겹드로잉의 인상에 대해 나는 이것이 회화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기록연구의 구조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의 불완전함 속에서 작가의 과제를 충실히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고백하고 그녀의 회화에 대한 고민을 잠시 회화 밖의 환경에서 동행하며 반쪽짜리 감상을 해보자 마음먹는다.

전시장 입구에서 검은 커튼(혹은 회화)을 마주한 당신은 그것을 열고 들어가기 전 어떤 ‘입장’을 선택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배우를 볼 것인지, 극을 빌려 구축된 무대의 문제를 관찰할 것인지 말이다. 이번 전시는 법정판례라는 텍스트와 그에 파생하여 펼쳐진 또 다른 영역의 무대, 그리고 추출된 결과로써의 회화, 세 가지의 굴절하는 축을 제시한다. 관객은 동선상 가장 먼저 어떤 글들을 만난다. 매우 중요하고 구체적인 프레파라트로서 이 텍스트는 글이라고 하기에는 제멋대로 부유하는 파편들이지만 주어진 단어 사이의 공백이 비극과 폭력의 서사임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사실’과 ‘증거’, 적용된 법령과 피고인의 가정환경, 사건발생 전후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 법정판례 자료이다. 사건에 대한 가장 이성적인 목적의 텍스트, 윤리적인 판단과 오해를 남기지 않아야 하는 객관적인 자료에서 동사와 형용사만 각각 남긴 종이 14장은 작가의 회화연구와 어떤 방향을 같이한다. 어떤 의미에서       ‘존속살해’라는 충격적 서사보다는, 범죄의 경우 공적인 합의를 위해 가장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사건을 “종결”시켜야만 하는 해부적 목적의 텍스트가 생산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주목할 만한 대상의 흡입력을 발견한다. 사건(회화)을 보는 우리는 사건(회화) 밖에 서 있다. 만약 우리가 현실의 비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가져와 그들의 서사를 확장하고 상상하고 변형하는 결론으로 본 전시를 관람한다면 각 과정의 구성체가 어떤 윤리적인 감정의 표면에서 쉽게 기화되거나 어긋나는 지점에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 전시에서 작가의 선택은 회화의 신체 밖으로 걸어 나와 다른 대상의 눈으로, 표면 밑의 회화적 사실과 과제를 관찰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1층의 둔탁하게 푸른 벽과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낮은 사운드( (2014) 사각의 격투기장에서 사고로 선수가 죽은 경기를 모아 만든 영상과 중앙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흐르는 낮은 백색소음의 설치작업)는 극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드러나지 않고 적당한 거리의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높낮이 없이 제공함으로써 전시장에 제시된 여러 프레파라트의 편평함을 지지하기도 한다.

박경률은 올해 초 회화가 가지는 “무의식”의 영역, 때로는 애매모호하고 지나치게 남용된  ‘무의식’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가지고 질병을 겪고 있는 그의 손님들(치매노인)과 회화의 구조를 실험한 바 있다. 최근 그녀의 몇 가지 실험은 개개의 음으로 곡을 구성하지만 실상 곡의 음계란 무엇이었냐는 치밀한 분석과 분할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의 구현, 특히 회화의 문제에서 결과 이전의 과정을 분절하고 분석함으로써 직관과 객관의 변주를 확인하고 동시에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굴절과 선택을 시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는 사건을 가져왔지만 사건은 회화의 소재만이 아니라 회화를 보는 눈으로써의 목적에 충실했다.

Artist Statement on 2013GOHAP404 _ PARK KYUNG RYUL, 2014

This is a statement I wrote after a few weeks have passed since the opening of the exhibition. This might be a reverse approach of the conventional method, planning(statement)-creation-installation-opening of exhibition-and review, for an entire exhibition to complete.


Push the crooked glass door next to a depleted gray sidewalk and a black curtain, not even a meter away, will obstruct your view. You have heard about the unsympathetic image of the showroom so you do not walk away but you are slightly dubious of where the entrance is or if this is all there is to see. You encourage yourself a little and poke the curtain here and there until you find one of the tree openings. Then with one deep breath, you enter the showroom. The deep breath is your first choice of willing to see something as well as a standpoint. It is a similar emotion that is evoked when you pass through a dark alley of an unlit movie theater. Upon entering the space after having unravelled the curtains with some luck, you need to take another deep breath. The opaque darkness made from imperfect lighting as well as the theatrical scene, divides this space with the streets of Yeongdeungpo you were in some minutes ago. After your eyes are used to the space, you finally see the three portraits (in the order they are installed), the set of paper on the table and the movie installation where a faint sound can be heard. The sound can actually be heard when you approach the table where the texts are laid out. By the time you reach deeply into the showroom towards where the sound naturally leads you, this delicate sound becomes a bait to shorten the time of selection by half a breadth. Then you turn your head to meet with a big painting hanging in space.

I confess that this exhibition is using several baits to lure you up to the last room of the second floor to speak about fundamental painting. The title of the show <2013GOHAP404> is the title of a court case from Daejeon District Court named 「2013GOHAP404 PATRICIDE」acting as the main bait to lead the audience throughout this exhibition accompanied by the layout order of the first floor calculated from the entrance of the showroom.

One axis transversing the theatrical setting of the first floor is the narrative. The texts and paintings introducing the characters and more or less suggesting the full account of the circumstances, along with the movie installation which seems to have captured the intense moment of the murder case, reveal how the narrative is extracted from the texts of the inevitably objective court case. To explain in more detail, with the exclusion of adjectives and verbs, every word used to describe the court case file is first deleted. Then, the three main characters (the victim, the defendant and the affiliate) are named and their personalities are created. By accepting the dramatic nature of the violence that you cannot but admit at first hand, in the end with all the materials at hand, you will start writing your own story as if you were one of the three characters. This becomes a narrative painting. From the court case used as materials, a narrative is extracted and transformed and by focusing on this process to select such narrative, it becomes a painting, filling the rest with texts and movie/sound installation. Then the painting moves on to the second floor.

The second floor consists of five rooms. The main adjectives used in the court case are separated and substituted with the fundamental questions about painting. For example, questions such as ‘Can unprocessed intuition be art? If so, what are the methods for intuition to become art? Is self-referenced painting truly unattractive?’, use each adjective as a medium to eventually make the painter ask himself to the painting. Paintings are thus placed in each room along with difficult access, low ceiling and cold fluorescent lighting. Such presentation hinders the attention of the audience who wishes to decipher the images of the paintings completed as overlaid drawings. Upon reaching the last room, four drawings which are overlaid drawings of the eight components of painting, are presented. The drawing installed in the deepest end of the dark room in the form of a light box appears first to make you realize that this exhibition is about scrutinizing painting by distancing itself from it, just as you would see the other side of a sock inside out.

Experiments in asking such fundamental questions is also a question of selecting what to contemplate. This does not come from drawing on an empty space but by pondering over randomly made drawings and the method of production learned from such outcome. As I have already conducted a project on subconscious drawings with demential elderly people in my last exhibition, the question on painting prevails to this exhibition. The rumination of selecting bait and variation trumps the question of what to draw and has entered to the step of which work of intuition to select.


선택의 문제, 무엇을 볼 것 인가 _ 박경률, 2014

이 글은 전시가 시작되고 몇 주가 흐른 뒤에 작석한 스테이트먼트다. 전시를 완성하는 보편적인 절차인 기획(스테이트먼트)-창작-설치-전시 오픈-리뷰의 방식을 역으로 접근한 셈이다.

황량한 회색 보도블록 옆 손질 안 된 유리문을 들어서면 불과 1m 앞에 검은 막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전시장의 불친절한 이미지 덕에 발길을 돌리지는 않으나, 사실은 입구가 어디인지, 아니면 이게 다인지 하는 사소한 갈등을 겪는다. 조금 용기를 내어 검은 장막을 푹푹 쑤셔보다 세 가지의 진입로 중 하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한 번의 심호흡과 함께 전시장에 입장하게 된다. 심호흡은 무엇을 보겠다는 첫 번째 선택이자 입장(立場)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깜깜한 영화관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서 느끼는 감정과도 같다. 운 좋게 검은 장막 너머 공간으로 진입하고 나면 다시금 한 번의 심호흡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은 조명이 만들어낸 불투명한 어둠과 연극적 장면이 일단 불과 몇 분전 있었던 영등포 거리와 이곳을 가른다. 잠시 눈을 공간에 익숙하게 만들고 나면 비로소 (순서 상) 초상화 세트와 테이블 위에 종이들, 그리고 희미한 사운드가 들리는 영상설치작업이 보인다. 사실 텍스트가 놓여 있는 테이블 근처에 왔을 때나 사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전시장 깊숙이 들어오게 될 때쯤, 이 미세한 사운드는 반 호흡 정도 선택의 시간을 단축하는 미끼가 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회화를 만난다.

고백하자면 이 전시는 여러 개의 미끼를 이용해 2층 마지막 방까지 유인하여 결국은 원론적인 회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 <2013고합 404>는 대전지방법원의 판례인 사건 <2013고합404존속살해>의 분류상의 제목이자 전시장 진입부터 계산된 1층 공간의 동선과 함께 이번 전시를 정주행하도록 유도하는 주요 미끼로 작용한다.

1층 공간의 연극적 상황들을 가로지는 하나의 축은 내러티브다. 캐릭터를 상정하고 적잖이 사건의 전말을 암시하는 텍스트와 회화, 그리고 살인사건의 격정적 순간을 포착한 듯한 영상철치작업들은 객관성을 담보하는  판례라는 텍스트에서 내러티브를 추출하는 방식을 차례로 보여준다.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판례 전문에서 각각 형용사와 동사를 제외한 모든 단어를 삭제한다. 그리고 주요인물 세명(피해자, 피의자, 관련인)에 대해 이름 짓기와 캐릭터를 만든다. 일차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드라마적인 폭력성을 인정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그러한 재료를 바탕으로 주요인물 중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그리고 공간은 서사적 회화가 된다. 법정판례라는 재료에서 내러티브가 추출되고 변이되는 과정에 집중하여 선택한 서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한 점의 회화, 그 이외에 다른 영역은 텍스트와 영상/사운드 설치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시 회화에 대한 부분은 2층 공간으로 넘어간다.

2층의 공간은 5개의 방으로 구성된다. 판례에서 쓰인 대표적 형용사를 원본의 내러티브에서 분리하고 그것을 회화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입시킨다. 가령, ‘가공되지 않은 직관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그런다면 직관이 예술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각각의 수식어를 매개로 하면서, 결국 회화가 회화에게 스스로 묻게끔 한다. 그렇게 회화는 동선의 번거로움과 낮은 천장, 그리고 차가운 형광등과 함께 각 방마다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이미지의 겹그림으로 완성된 회화 속 이미지를 해독해 보려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고 마지막 방에 다다르면 회화의 구성 요소를 분리한 각각8장의 드로잉을 겹친 4점의 그림을 보게 된다. 어두운 방에서 마치 라이트 박스처럼 연출된 가장 안쪽 깊숙이 설치 된 드로잉부터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마치 바로 신은 양말을 뒤집어 그 이면을 본 것처럼 이 전시가 회화와 거리를 두고 그 면면을 따져보려는 것임을 눈치채게 된다.

이렇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실험은 곧 무엇을 선택해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빈 화면에 그려 넣게 될 ‘어떤 것’이 아니라, 우선 무작위로 그려놓고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로 체득된 제작 방식에서 온다. 이미 이전 전시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리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에 대해 치매 노인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듯이, 회화에 대한 질문은 본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미끼와 변주의 선택이라는 고민은 무엇을 그리느냐는 문제를 넘어 직관 된 모든 것 중 어떤 것을 선택 하느냐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On the Exhibition ‘Vulnerable Drawing’ _ KIM IN SUN (Director of Willing N Dealing), 2013

The paintings I had seen of the artist Park Kyung Ryul were tanglements of images that seemed as if everything inside the head had been thrown up on top of massive canvases. One day, the artist talked about a drawing project based on conversations with demented elders, and I was curious about what relation it would come to have with the artist’s work up until that moment.  This next project, which will be held in Willing N Dealing, could probably well become the next step in creating a new style for the artist and might even allow us to unexpectedly reach an intimate relation to her existing works.


This is how the project goes: its subjects are the artist’s paternal grandmother and the elders that are under the care of the Dementia Community Center of Yongsan-gu. Together, they talk about the old days and make drawings. The artist regularly meets with three elders and pulls stories out of their old memories. In conversations with demented elders, out of the blue, famous people or off-the-wall nouns referring to themselves appear, like“I am yellow”.  While listening to their stories and identifying, one by one, the associated images inside their heads, each of the elders’drawings were revealed. Their stories usually dwell in the past as incoherent, and although their current situations are blank slates, they talk about memories that are more than 60 years old, as clearly as if they had happened yesterday. Most of their stories are reproduced with the artist’s hand, and the coloring work is done by the elders. The elders were interviewed to tell stories of the old days, tracing back their own memories.  The stories were put into a fake documentary film, with the woven stories fabricated into a single story of an elderly actress.


After finishing the project at the dementia center, I visited the artist’s studio. The artist took out massive drawings, little drawings, drawings of the elders, films – all of which will be installed and shown in the exhibition. The artist talked about the personal change that she underwent while doing this project. The artist’s original working style was to collage her experiences and memory into a composition on the canvas, stirring the field of ‘unconsciousness.’ In this project, the artist wanted to embark on a persistent investigation of ‘drawing unconsciously.’ According to the artist’s words, the moment something is expressed, it is bound to be in the state of consciousness, even‘it had been drawn unconsciously’. Therefore, the hypothesis which the artist comes to is this: “unconsciousness is consciousness that is in the unperceivable range. In other words, within the range of consciousness, there is unconsciousness and perception, and what is transformed from the range of unconsciousness into the range of perception may be the so-called unconscious drawing in art.” Because the artist had always worked alone, this was her first time working in a way in which she meets someone and together, listen to stories. The artist herself had been skeptical of working with this approach, but it seems that during her regular meeting with these elders, the artist experienced an assimilation of emotion: crying and laughing at their stories. At the end of the project, there was a situation where one of the demented elderly women could no longer come to the dementia center because her husband who had late-stage lung cancer, and who always brought her to the center eventually passed away.  This demented old woman could not feel any pain and the artist was sad. This woman’s drawing, therefore, looks lonesome, vulnerable, and innocent.


In the drawings, we are able to see their lucid memories inside their unconsciousness along with the fabricated stories, coming together at some point and becoming tangled-up. The artist, drawn into their field of unconsciousness, could not completely shake off what seemed to have been shared emotions of their brilliant and ruthful pasts. Thus, an unexpected empathy occurred, and due to it, their stories are once again reproduced as a story that the artist tells, seasoned with emotional lines in each of the massive drawings. The artist’s previous paintings are characterized by their solid images, dense compositions, intense colors, and the sense that it was completely assembled. It was like an assembly of multiple, and distinctly completed images, pulled out her own memory, washed and polished to be revealed in the world. The drawings that were made for this exhibition, on the other hand, excluded the process of fabrication as much as possible. It seems as though she is trying to maintain the rawness of the emotions and stories of the elders.  At the same time, her drawings are also trying to maintain the images formed from the emotion itself. To accompany these drawings, the artist made up a short story. This can be read with my figure which is being reflected on a mirror, and this story is a new story created by combining mostly the elders’ ridiculous story-like expressions and the artist’s imagination.


Now, on the eve of the exhibition, the artist says that oddly she does not experience impatience nor anxiety right before exhibitions. She says that she even feels a sense of stability to the extent that it is worrisome. And above all, she says that she thinks she has matured. This gives me great comfort. I hope that those who see this exhibition can also be consoled. Also, I send my gratitude to the artist who, in this exhibition wrapping up 2013, allowed me to reflect on myself from the past up to today, putting aside the eyes heading towards the future.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전에 부쳐 _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디렉터), 2013


내가 이전 까지 보아온 박경률 작가의 회화는 거대한 캔버스 위로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토해져 나오는듯한 이미지의 뒤엉킴이었다. 어느 날 작가는 치매 노인들과의 대화를 통한 드로잉 프로젝트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고 이 프로젝트가 지금까지의 작가의 작업 태도와는 어떠한 연관성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윌링앤딜링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를 위한 프로젝트가 박경률 작가의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 질 수 있는 다음 단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기존의 작업과의 의외로 긴말한 지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프로젝트 과정은 이러했다. 용산구 치매센터의 복지관에서 돌보고 있는 치매 노인과 작가의 친할머니를 대상으로 한다. 함께 옛날 얘기를 나누며 드로잉을 함께 그린다. 작가는 세 명의 노인들 하나하나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들의 옛날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치매 노인과의 대화에서는 난데없이 유명 인사가 등장하거나 자신을 지칭하는 엉뚱한 명사들이 등장한다. 가령 "나는 노란색이야." 같은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연상하고 있는 머리속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노인들 각자의 드로잉이 드러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주로 과거에 머물러 있고 두서가 없으며, 정작 지금의 상황은 백지 상태이나 거의 60년도 넘은 기억을 어제 일처럼 뚜렷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손으로 대부분 재현되고 이들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노인들이 한다. 작가의 친할머니를 비롯한 노인들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를 하였고 이는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그리고 작가와 함께 한 노인들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가공되어 또 다른 성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다. 그 영상은 노인 배우의 연기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서 제작되었다


치매센터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작가는 전시에서 보여 줄 거대한 드로잉들과 작은 드로잉, 할머니들의 드로잉, 영상 그리고 설치할 작업 등을 내 놓았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자신의 작업 스타일이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캔버스 속에서 콜라주 되듯 구성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무의식'영역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린다'라는 것에 대한 보다 집요한 탐색을 시작하고자 하였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예술에 있어서, 비록 '무의식적으로 그렸다'라고 표현할지라도, 뭔가가 표현되는 순간 의식의 상태에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가 세운 가설은 "무의식은 인식할 수 없는 범위에 있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의 범주 안에 무의식과 인식이 있게 되고, 그런 무의식의 범주에 있는 것들의 인식의 범위로 전환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예술에서의 무의식적 그리기일 것이다."라는 것. 작가는 워낙 혼자서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상호 교감하는 종류의 작업은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다. 익숙치 못한 접근 형식에 대하여 작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던 작업이다. 그런데 이 노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 감정의 동화가 일어났던 모양이다. 프로젝트의 막바지에는 치매 할머니를 항상 데리러 오던 폐암 말기의 남편 할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셔서 치매센터로 더 이상 이분을 모시러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치매할머니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고 작가는 슬펐다. 이 노인의 드로잉은 그래서 허전하고 연약하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우리는 드로잉들 속에서 그들의 무의식 속에 여전히 인식 가능한 기억들과 어느 지점에서 조합되어버린 가공의 이야기들이 뒤엉켜 있음을 볼 수 있다. 작가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어내려 하였던 무의식의 영역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서 그들의 찬란했던 혹은 서글펐던 과거의 감정을 공유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감정의 이입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작가의 거대한 드로잉 속에서 감정선이 가미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서 재현도고 있다. 그의 이전 회화 속에는 언제나 완성도 있는 탄탄한 이미지들이 모여 있었고 밀도감 있는 구성과 색채가 강렬하였다. 마치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세상에 드러낼 때 닦고 다듬어서 완성한 이미지의 요소들의 조합과도 같았다. 반면 이번에 만들어진 드로잉은 최대한 가공의 과정을 배제하였다. 노인들의 감정과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최대한 날것으로 보여주고자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드로잉도 최대한 감정 그 자체에서 형성되었던 이미지를 최대한 보존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미지들이 뒤섞여가며 완성된 드로잉들과 함께 작가는 짧은 소설을 만들었다. 이는 거울 위에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과 함께 읽어 내려 갈 수 있으며 이 소설은 대부분 할머니들의 소설 같은 황당한 표현들과 작가의 상상력이 조합되어 탄생한 새로운 이야기이다. ● 전시가 임박한 지금, 작가는 이상하게도 전시 직전의 조급함과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맘이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정감도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작가의 모습이 나에게도 큰 위안이다. 이 전시를 보는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2013년을 마무리하는 이번 전시에 미래를 향한 시선을 잠시 접어 두고 과거의 모습으로부터 지금의 내가 어떠한 모습인지 반추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준 작가에게 감사를 보낸다.

Review on ‘Vulnerable Drawing’ _ LEE KWAN HOON (Curator of Project Space Sarubia Dabang)_ Monthly Art, Feb. 2014

WILLING N DEALING 2013.12.24-2014.1.24

WILLING N DEALING 2013.12.24-2014.1.24

박경률의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는 프로젝트 성격을 띤 전시로 먼저 용산구 치매센터에서 치매 노인 3명과 함께 실행(인터뷰/4주간 24회, 드로잉)한 <가능성의 릴레이>(2013.11.2~29)와 연결된 구성을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치매환자인 친할머니의 인터뷰 영상과 치매 노인 3명의 인터뷰를 각색하여 노인 배우의 연기를 통해 제작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그 노인들과 함께 얘기하며 풀어낸 드로잉들과 그 얘기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단편 소설(<고요한 소녀>, 세 개의 거울액자 속에 새김), 또한 이러한 경험과 자신의 기억을 의식과 무의식 관계 속에서 배설한 낱개의 드로잉 및 서술된 드로잉들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즉 ‘무의식적으로 그린다?’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화두를 프로젝트로 증명해보이려고 했다. 작가가 자율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어떤 대상을 ‘채우고-지우기’를 반복하며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상, 현상, 사건, 기억, 번안, 편견 등을 자신의 언어로 전환하여 콜라주하거나 스토리화하는 과정을 겪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화두도 이러한 되새김질 현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부딪히는 일상의 사건들과 잠재된 기억들을 자신만의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서 해체시키는 일련의 드로잉들을 페인팅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을 했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불과했던 드로잉들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자신의언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실험하며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어떤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거나 너무도 일반적 의미인 ‘무의식’을 화두로 삼아 치매 환자분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그 과정이 다시 자신을 들여다보며(거울 현상) 이미 형성되었거나 무의식을경험하는 태도로 자신의 언어를 해체하는 자각현상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무의식의 태도로 접근한다는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내어놓고 다시 시험받는, 그래서 역으로 영역화된 페인팅을 유연하게 해체시켜 ’연약한드로잉’이라고 명명한 것이 아닐까. (큰 작품의 드로잉은 여느작가들의 드로잉에 비해 구조적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언어의 환영체가 구축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감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 언어와 이미지 사이를 열어놓고 탐색하는 드로잉적인 사유의 태도로 접근하게 하여 보는 이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호흡을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고요한 소녀> 작품이다. 자기언어를 구축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박경률 작가의 프로젝트를 통한 시각적 행위는 끊임없는 화두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나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예견치 못한 내러티브적인 얘기들을 들춰내어 이미지효과를 떠나 메시지 전달로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로써 그가 앞으로 유형과 무형, 사람과 사람, 글과 이미지, 책 속의 앞뒤 간지 등의 수많은 ‘사이 공간’에까지 사유를 넓혀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객체와 주체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을 거부하는 정서적 흐름이 그의 인문학적 태도에 기인하며, 동시에 주체의 인식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그의 이면과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가능한 시도들이었고, 하나의 매체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